청계천이 없는 서울
서울풍물시장이 없는 서울
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세종대왕은 청계천을 생활하천으로 결정하였다. 이로써 청계천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도성에서 배출되는 많은 생활쓰레기를 씻어내는 하수도로서 기능을함으로써
도성 전체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게된 것이다.
‘서울풍물시장’ 은 새것보다는 ‘헌것’을 다루는 시장입니다.
청계천과 함께하면서 일제 강점기부터 빈민계층의 거주와 생계유지를 위해 형성되었던
서울풍물시장은과거 논밭이었던 이곳에 황학이 날아와 새끼를 치고 살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황학동. 일명 ‘도깨비시장’이라고도불리는데 그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낮에는 인산인해를 이루던 시장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취급하는 물건이 마치 도깨비의 물건처럼 낡고 오래된
것들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1950년대 초, 6.25이후 고물상들이 밀려들어온 바로 그 무렵부터가 서울풍물시장의 초기형태이다. 1973년 청계천 복개공사가 완료된 후 인근의 삼일 아파트를 중심으로
중고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전국에서 수집된 물건 중에서는 종종 진품도 나왔다. 이 소문에 골동품상들이 몰려들었고, 수집가들도 따라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황학동 도깨비시장은 한때 1백30여 개의 골동품상이 밀집하여 골동품 거리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1980~90년대에는 중고품상점의 비율이 높아졌다.
이처럼 서울의 근대화 과정에 따라 거래물품을 변화 시켜가며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 서울풍물시장은, 2003년이전에는 중고품 유통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관광지로서도 역할을 했었다. 특히 인접한 동대문시장이 현대화로 인해 대규모 상업지구로 변한 것에 반해 쉽게 편입되지 않고 '중고품 거래'라는 특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서울풍물시장은 고서, 가발, 골동품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이전에는 카메라와 전자제품의 판매와 수리까지 이루어진다.
다양한 거래품목만큼 서울풍물시장의 명칭도 장소가 지닌 상징적, 역사적 의미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불러왔다.
86아시안게임이 진행되면서 서울풍물시장은 침체 위기를 맞는다.
정부에서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장안평에 골동품상가를 설치하면서
황학동 골동품 가게들을 대거 이주시켰기 때문. 이때 최고 1백30여 곳에
달하던 골동품 가게의 수가 20여곳 안팎으로 대폭 줄어들면서 골동품
상권도 소실되어 버렸다.
그러나 시민들의 생각과 모든 상인들이 원하듯 천국을 벼룩 뛰듯 돌아다니며
희귀한 물건을 모아온다거나 물건에서 벼룩이 금방이라도 기어 나올 것
같다는 의미에서 '벼룩시장', 오래되고 망가진 물건이라도 감쪽같이 새것으로
된다고 해서 '도깨비시장', 개미처럼 열심히 일한다하여 '개미시장',
각종고물을 취급해서 '고물시장', 없는 물건이 없이 다 있다 해서 '만물시장',
구식이 되어버린 물건이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라 하여'마지막 시장'으로
재탄생하게 된것이다.
(목선경, 1992 〈성남모란장〉≪얼과 문화≫5월호:18-20) 서울풍물시장을
거닐다 보면 추억의 물건들이 많이 보였다.
누렇게 변색된 고서나 대형서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절판된 책, 386세대
들이 즐겨듣던 다양한 LP음반, 각종군사용품, 백색가전 등 쉽게 구입하기
힘든 특정중고품이 눈에 많이 띈다. 버려진 물건이 새 주인을 만나 제 빛을
발하는 것처럼 세월이 지나도 물건의 가치를 아는 손님과 20~30년간 한
자리를 지켜가며 물건을 파는 상인 간에는 신용을 바탕으로한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처럼 서울풍물시장은 도심의 고층빌딩사이에서 소외되어 보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 놓은 흔적은하나의 역사가 되어 오늘도 추억을
찾고자 하는 이들을 맞아던것이다.
고유의 향기를 갖고 문화의 층이 켜켜이 쌓여 형성된 도심 속의문화장터
서울풍물시장은 제품의 종류 만큼이나 값도 다양하다.특히 주말에는
입구부터 늘어선 좌판과 시장 골목골목을 가득메운 인파에 놀랄수밖에
없었다. 또한 청계천로까지 4차 선중 2차선이 벼룩시장으로 돌변해 흡사
도깨비시장을 찾은 느낌을받는 데 이것이 서울풍물시장만의
매력이었던것이다.
그런 서울풍물시장은 이전에는 "황학동벼룩시장"이라는 명칭에서 2003년 "동대문 풍물벼룩시장"이라는 명칭으로 이전하게 된것이다.
이후로 서울시와 "1000번" 이상의 많은 협의를 거쳐 이곳 신설동 "서울풍물시장"이라는 명칭으로 바뀌면서 향학동과 동대문운동장의 역사와 함께했던 시간을 보내면 2008년
이곳에서 세계적인 명소 대한민국의 명소로 태어날 것이다.
그 수많은 인고의 시간속에 잉태되어 태어난 "서울풍물시장"은 어느 누구도 감히 손댈수없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함께하면서 일구어낸 시장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위 내용은 많은 시민 여러분들의 글을 참조하고 발췌하였습니다]